Go to Top

이전에 바베큐 명소로도 소개한 적이 있는 텍사스 오스틴에는 일명 ‘광란의 6번가’로 불리는, 우편번호로 따지면 전미에서 가장 많은 술집이 자리 잡고 있는 번화가가 있다. 주점의 밀집도가 벌집을 연상케 하는 이 오스틴의 중심지 (하지만 심장보다는 위장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에서는 오늘도 어김없이 파티가 진행 중이다.

그러한 “Dirty Sixth”에서 한 발치 떨어진 곳에 아는 사람만 아는 오스틴 최고의 칵테일 바가 진주처럼 숨어있다. 처음 찾는 이들은 우연히 발을 들여도 그 후에는 필연적으로 꼭 다시 찾게 된다는 그곳, 내가 ‘더 루즈벨트 룸(The Roosevelt Room)’을 처음 찾게 된 것도 순전히 우연이었다. 친한 친구와 시끌벅적한 번화가를 피해 좀 더 진중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비교적 차분해 보이는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어느 소박한 간판이 향하는 곳으로 들어가 보았다. 바에 앉아 올드 패션드(Old Fashioned)를 시켰다.

바텐더의 현란한 손놀림으로 뚝딱 만들어진, 위스키와 비터즈와 오렌지 껍질 향의 잘 어우러진 조화. 그리고 그것을 뒤따른 것은 한 모금 들이킨 후 나에게 찾아온 놀람과 약간의 쑥스러움의 어색한 조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칵테일이 이토록 맛있는 술인지 몰랐다고 하면 내 기분이 조금은 이해가 될까. 항상 젖과 술이 마르지 않는 이 오스틴에서조차 맛있는(더 중요하게는 꾸준히 맛있는) 칵테일을 찾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고 나는 자신도 모르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마치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에는 불행과 기근이 언제나 자리 잡고 있을 거라는 것을 받아들이듯이 말이다. 나는 올드 패션드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음미하고 나서, 두 번째 라운드를 시켰다.

이 메뉴판도 원한다면 구매할 수 있다. 메뉴라기보단 ‘칵테일의 역사’ 같은 제목으로 나온 지침서 같다.

칵테일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도수가 꽤나 나가는 술이고, 더구나 여러 재료를 섞어 마시는 술인지라 조심해야 하는 걸 아는데도 불구하고 하루에 그렇게 많은 칵테일을 시켜본 적은 처음이었다. 기분이 좋아져 그렇게 많은 팁을 지불한 것 역시 처음이었다. 허나 미각이 즐거울수록 간에게는 지는 싸움. ‘먼저 가, 난 틀렸어.’ 간이 말한다. ‘내 몫까지 행복해야 해!’(지나친 음주는 건강에 해롭습니다)

몇 주 후에 우리는 그 칵테일 바를 다시 찾았다. 우리 둘 다 알콜에 대한 내성이 약하지 않은 편임에 감사하며 밤 동안 대여섯 종류의 칵테일을 시켰다. 그 후로도 나는 더 루즈벨트 룸을 다시 찾기 위한 핑계를 만들기 위해 여러 친구를 소개차 데리고 갔고, 데려갈 친구가 바닥이 난 뒤에는 개의치 않고 혼자서도 드나들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새 더 루즈벨트 룸의 비공식적인 홍보대사 같은 것이 되어있었고(이제 이 글을 씀으로써 편히 쉴 수 있겠다) 취재를 하기 위해 오너인 저스틴 라베뉴와 만났다. 저스틴은 믹솔로지(mixology: 칵테일을 만드는 기술) 장인으로, 미국에서 여러 상을 타며 믹솔로지 계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바텐더이자 사업가다.

고전적인 것과 모던한 것이 공존하는 더 루즈벨트 룸은 53가지의 고전 칵테일을 각 탄생한 시기별로 나눈 것이 특징이다. 이는 칵테일이 미국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과정을 Early Years(초기, 1880년 이전), Turn of the Century(세기가 바뀌는 과도기, 1880~1919년), Prohibition(금주법 시대, 1920~1933년), Post Volstead(금주법 폐기 후, 1933~1950년대), TIKI (트로피컬 칵테일 시대, 1930년대~1970년대), Dark Ages(암흑기, 1950년대~1990년대), 그리고 Modern Classics(모던 클래식, 2000년대 이후)로 나눈 것이다. 여기에 해피 아워(Happy hour: 주점이나 음식점의 할인 시간대. 덜 붐비는 이른 저녁 시간에는 할인해 주는 메뉴) 고전 칵테일 7가지와 더 루즈벨트 룸만의 창작 칵테일 11가지를 더하면 총 71가지의 칵테일을 마셔볼 수 있다.

이 중 53가지의 고전 칵테일만이라도 다 시도해 본다면 명판에 이름을 새겨주는데,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칵테일에 전 재산을 탕진해 거리에 나앉은 일 년 후 나의 모습을 상상해버렸다. 아니, 이렇게 많은 종류를 다 시도해보고 맛을 기억하기조차 쉽지 않을 텐데, 일일이 다 만들 줄 알아야 한다면 그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이 정도의 다양한 메뉴를 운영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저스틴은 말했다. “특히나 25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공간에 바텐더는 고작 다섯 명 뿐이니 말이에요. 그 와중에도 칵테일 제조에 있어 엄격한 퀄리티 유지는 필수이기 때문에 저희 바텐더들은 매우 효율적으로 움직여야만 합니다. 모든 바텐더들이 그러한 압박 속에서 일을 완벽하게 수행해낼 수 있게끔 훈련시키고 있죠.”

더 루즈벨트 룸의 바텐더 훈련 프로그램은 전미에서 가장 엄격한 수준을 자랑한다. 손님을 상대하기 전에 모든 바텐더 훈련생은 다섯 개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하는데, 그 중에는 메뉴에 있는 모든 칵테일을 정해진 방식과 순서에 따라 제조해야 하는 시험도 있다(단 하나의 실수 없이 한 번에 통과하더라도 최소 4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시험을 통과했다고 교육이 끝나는 건 아닙니다. 훈련생 딱지를 떼고 공식 바텐더가 된 이후에도 꾸준히 새로운 바텐딩 기술이나 스피릿(spirit: 위스키, 럼, 진 등 칵테일의 원재료가 되는 알콜)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고,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통해 스피릿에 대한 이해와 안목을 넓히는 것을 도와줍니다.” 저스틴이 말했다. “현재 미국에서 BAR 5-Day(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인 믹솔로지/스피릿 프로그램) 졸업자를 가장 많이 보유한 것도 더 루즈벨트 룸입니다.”

하루에 그렇게 많은 칵테일을 시켜본 적은 처음이었다. 기분이 좋아져 그렇게 많은 팁을 지불한 것 역시 처음이었다. 허나 미각이 즐거울수록 간에게는 지는 싸움.

가장 좋아하는 칵테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하자 저스틴은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부모같은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인터뷰를 위해 특별히 선호하는 몇 가지 종류를 꼽아주었다. 칵테일 장인이 가장 애착을 가지는 종류는 간소하고 소박한 류의 칵테일이었다.

“다이커리(Daiquiri)는 레시피만 보면 매우 간단한 칵테일입니다. 럼주, 라임, 그리고 설탕 (혹은 시럽)이 재료의 전부예요. 하지만 완벽하게 만들기는 만만치 않죠.” 저스틴이 말했다. “더 루즈벨트 룸에서 선보이는 다이커리는 그 어느 다이커리보다 가장 완벽에 가깝다고 자부합니다.”

장인 정신으로 탄생한 칵테일의 맛이 궁금하다면 더 루즈벨트 룸을 방문해 보자.

더 루즈벨트 룸(The Roosevelt Room)
307 W 5th St, Austin, TX 78701
월-토 5PM-2AM
일 3PM-12AM
해피 아워 5PM-7PM (월, 화는 종일)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