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는 배트맨의 최대 적수, 빌런 대표 조커에 관한 적나라하고도 사실적인 이야기로 찬사를 받으며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코믹스 영화 사상 최초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도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모방 범죄를 야기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에도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며 순항 중이다.

이 영화를 완성 시키는 여러 요소 중 하나는 바로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다. 오스카상을 노려봐도 좋을 듯한 그의 연기는 매 장면 공기를 압도하는 에너지를 뿜어내며, 눈빛과 몸짓 아니 그의 존재 자체로 스크린을 장악한다. 그의 미친 연기를 목도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는 평가가 지배적. 하지만 희대의 악마 ‘조커’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뛰어난 배우의 연기력만으로는 부족하다.

토머스 웨인 같은 메인 캐릭터와 1980년대 뉴욕을 연상시키는 쥐가 득실거리는 고담시 배경 묘사를 제외하면, 이 영화는 줄곧 인생의 동반차처럼 따라다녔던 불행 덕분에 폭력을 자행하는 한 불완전한 남자에 관한 드라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읽힌다.

평범한 인간이었던 아서 플렉이 겪는 사람들의 멸시와 편견, 아비 부재, 자꾸 미끄러지는 꿈 사이에서 고개를 들이미는 좌절감 등은 너무 뻔하고 익숙한 결핍의 클리셰로밖에 다가오지 않는다. 조커를 동정 여론 앞에 세우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겠지. 또한 그가 자행하는 모든 일이 망상일 수도 있다는 해석의 여지를 던지는 건 무책임하고 해묵은 떡밥에 불과하다.

한때 소심하고, 어리석으며, 재미없기까지 했던 남자가 광대 얼굴을 한 범죄의 왕이 되었는지 기원을 설명해 주고 싶었다면, 조커를 실제하는 인물로서 현실 세계에 두 발을 딛게 했다면, 그가 느낀 통각의 지점들을 더 디테일하게 그렸어야 했다.

잭 니콜슨 이후 우리가 조커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인물은 히스 레저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버전의 조커가 지녔던 영화적 매력은 그의 행동들이 혼란스럽고, 즉흥적이며, 정신 나간 것으로 묘사되는 동시에 자행하는 일들이 매우 신중하고 꼼꼼하게 계획되었다는 데에 있었다.

배트맨에게 있어 최대의 적수이자 소설 속 최고의 악당으로 꼽히는 조커. 그가 고담시 범죄의 판도를 뒤흔들 것이라 기대하게 만들었지만, 스크린 속아서 플렉 모습은 무기력하고 폭력을 사용하는 순간들이 감정적으로만 행해지는 듯 보인다. 작위적인 설정들 때문인지 아서 플렉은 이미 짜인 플롯을 따라 움직이도록 설정해 놓은 인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아킨 피닉스가 이성을 잃어가는 벼랑 끝의 남자를 탁월하게 표현했다는 것엔 이견이 없다. 표정 연기뿐만 아니라 몸의 움직임은 캐릭터가 가진 불안한 정신 상태를 투영했다. 하지만 그의 열연에도 ‘조커’는 매력도 카리스마도 없는 불완전하기만 한 살인마를 그리는 데 그친 한 편의 스릴러에 불과하다. 이 영화는 조커라는 캐릭터와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에 빚을 졌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