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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은 여름 록 페스티벌 종말의 해가 될까?
2023-02-22T18:58:09+09:00
2019년은 여름 록 페스티벌 종말의 해가 될까?

그 많던 록 페스티벌들이 감쪽같이 사라진 이유.

온도계의 수은주가 점차 치솟는 뜨거운 계절이 오면서 국내 록 페스티벌 라인업도 하나씩 베일을 벗고 있다. 한때는 트렌드를 타고 국내에 수많은 록 페스티벌이 난립한 적도 있다. 물론 거품이 걷히면서 그 많던 페스티벌은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현재까지 살아남은 대규모 여름 록 페스티벌은 2~3개 정도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생존한 이 2~3개의 행사는 모두 10~20년간 역사를 이어온 전통의 여름 록 페스티벌들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좋지 않다. 단순히 록 페스티벌의 시대가 저물어간다는 전 세계적 추이의 문제가 아니다. 이들이 처한 ‘어른의 사정’을 한번 들여다보자.

‘록 밴드’가 없는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

2000년부터 시작된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은 올해까지 단 한 번의 휴식 없이 19년을 꾸준히 달려온 페스티벌이다. 무엇보다도 다른 록 페스티벌과 차별화되는 특징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무료 행사이며 또 하나는 강력한 록/메탈 밴드의 라인업을 내세운다는 점이었다. 이는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의 정체성이기도 했다.

그러던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은 올해부터 유료화로 전환됐다. 시의 지원이 아닌, 자생력을 가진 페스티벌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다. 다행히 매년 무료로 양질의 아티스트를 선보인 이 행사에는 애정을 가진 열렬한 팬층이 있었다. 유료화에도 불구하고 팬들이 지지를 거두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발표된 결과물은 실망을 넘어 충격에 가깝다. 7월 27~28일 양일간 열리는 이 행사의 27일 토요일 헤드라이너는 원래 시스템 오브 어 다운(System of a Down, 이하 SOAD)이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지난 6월 6일, 주최 측은 갑자기 SOAD의 출연 취소를 알렸다. 이유가 가관인데, 주최 측이 연락했던 SOAD 측 담당자가 공식 매니지먼트가 아닌, 이를 사칭한 사람이었다는 것. 결국 주최 측은 부랴부랴 새 라인업을 발표했는데, 황당하게도 27일의 헤드라이너는 남성 아이돌 그룹 god였다.

록 팬들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단순히 ‘록부심’을 부리려는 게 아니다. ‘록’ 페스티벌의 이름을 달고 있는 행사에서 대미를 장식하는 주인공 자리를 록 밴드가 아닌 아이돌이 꿰차는 것은 당위성도, 설득력도 없다. 심지어 god는 록 음악을 기반으로 하는 아이돌도 아니다. 18년 역사의 정체성을 한순간에 갈아엎는 이 결정이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주최 측이 처한 ‘다급한 사정과 흥행에 대한 부담’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 ‘다급한 사정’이라는 문제도 엄밀히 말하면 주최측의 무능력에 그 책임 소재가 있다. 그동안 기반이 되어준 충성스러운 팬층은 올해를 기점으로 대거 이탈할 것이며, 주최 측은 내년도 행사에서 다시 흥행을 위한 아이돌 섭외의 딜레마에 발이 묶이게 될 것이다.

펜타포트가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

인천시가 주최하는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하 펜타포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1999년 트라이포트로부터 시작된 펜타포트는 국내 최초의 대규모 야외 록 페스티벌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역사와 전통의 행사다. 그동안 펜타포트의 행사 주관은 예스컴이라는 회사가 담당해왔다. 그런데 장기간 이어진 인천시와 예스컴의 이 수의계약 관계가 올해 초 문제가 됐다.

이에 인천시와 인천관광공사는 부랴부랴 펜타포트를 공모 계약으로 전환하고 공개입찰을 진행했다. 그런데 새 주관사로 선정된 곳은 경기/인천 지역 언론사인 경인일보였다. 해외 뮤지션을 섭외해야 하는, 이미 전국구 규모가 돼버린 페스티벌의 주관을 지방기업에 맡긴 것이다.

물론 고착화된 장기 수의계약은 분명 문제점이 맞다. 하지만 대안도 전혀 없이 이를 주먹구구식으로 바꾸는 것은 더 문제다. 기획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가 없다면 적어도 준비 기간이라도 있었어야 했다. 하다못해 인천시는 기존 주관사인 예스컴과의 수의계약에 대한 정당성을 찾아 이를 외부에 이해시키거나, 새 주관사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1년이라도 유보를 해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준비 없이 계약에 임한 새 주관사의 섭외력은 처참했다. 투 도어 시네마 클럽(Two Door Cinema Club)위저(Weezer)가 있지만, 이들은 이미 수차례 내한한 바 있어 희소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결국 빅네임은 하나도 섭외하지 못했는데, 황당하게도 티켓가는 작년과 동일한 금액을 책정했다. 펜타포트가 자랑하는 ‘합리적인 가격’의 전통마저 사라진 셈이다.

문제는 라인업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동안 펜타포트는 ‘라인업은 화려하지 않지만, 대신 가성비가 좋고 팬 지향적인 운용의 묘’가 빛나는 페스티벌이었다. 전문공연기획사가 십수 년에 걸쳐 쌓아온 노하우 덕분이다. 이를 새 주관사에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게다가 이들은 이미 섭외와 가격 책정에서부터 빈약한 밑천을 전부 드러냈다. 혹시라도 이 과정에서 올해 펜타포트가 흥행 참패를 겪는다면? 그래서 만약 인천시가 내년 행사에 대한 지원을 철회한다면? 물론 이는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지만, 업계에서는 벌써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산’의 이름값을 두고 결국 자멸한 두 페스티벌의 비극

그렇다면 과거 화려한 라인업으로 전 세계 유수의 음악 페스티벌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은 어떻게 됐을까? 이미 이들은 ‘지산’이라는 이름값을 두고 여러 기업의 이해득실 관계가 얼키설키 엮이면서 자멸한 지 오래다.

2009년, 펜타포트에서 떨어져나온 나인엔터테인먼트가 오아시스(Oasis)를 섭외하며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의 화려한 출발을 알렸다. 하지만 2011년부터 대기업인 CJ E&M이 참여하며 상업적인 성향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2013년 CJ E&M이 계약 문제로 지산 리조트를 떠나 안산 대부도에서 밸리 록 페스티벌을 개최하게 됐는데, 지산 리조트 측은 또 ‘지산’이라는 이름값에 편승해 페스티벌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그렇게 2013년에는 오리지널이지만 지산의 이름이 없는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과, 지산의 이름만 있는 ‘지산 월드 록 페스티벌’로 양분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당연히 지산 월드 록 페스티벌은 시원하게 망했고,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도 대부도의 열악한 환경에서 거듭되는 최악의 운영 행태를 보여줬다. 2015년에는 경호원의 관객 폭행 사건까지 터졌다. 우여곡절 끝에 밸리 록 페스티벌이 2016년 다시 지산 리조트로 돌아오긴 했으나, 운영 능력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CJ E&M은 결국 2018년부터 올해까지 2년 연속으로 페스티벌을 쉬면서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이 틈을 탄 지산 월드 록 페스티벌이 올해 부활을 선언했으나, 실속 없는 라인업에 과도한 티켓가로 뭇매만 맞고 있다.

페스티벌의 핵심은 라인업이 아닌 ‘철학’에 있다

한때는 광풍이라 할 정도로 난립했던 록 페스티벌은 현재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실패의 원인은 명확했다. 철학도, 애정도, 운영 의지도 없었던 기업과 지자체들이 오로지 돈벌이와 성과를 목적으로 뛰어든 처참한 결과다.

음악과 운영에 대한 철학이 없는 페스티벌은 장기적으로는 팬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록 페스티벌의 핵심은 철학이다. 물론 화려한 라인업이 즉각적인 흥행 유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음악과 운영에 대한 철학이 없는 페스티벌은 장기적으로는 팬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미 우리는 최근 몇 년간 이어진 무수한 실패들을 통해 훌륭한 반면교사를 얻지 않았나. 그런데도 살아남은 이들마저 또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디 기업·지자체의 한순간의 오판으로 얼마 남지 않은 이 훌륭한 록 페스티벌들 마저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일만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