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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주 작가가 말하는 당신과 나의 공간 ‘망우삼림’
2023-02-22T19:23:00+09:00

망각의 숲으로 오세요. 우울한 기억을 지워드립니다.

사진은 시간의 무덤이고, 순간의 환생이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던 날, 삶과 죽음이 소리 없이 피어나는 망각의 숲으로 갔다. 다녀가는 이들의 발자국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곳, 그 숲에는 사진작가 윤병주가 있다.

망우삼림은 나쁜 기억을 잊게 해주는 곳인데, 사실 인화라는 건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어떤 순간을 건져 올려주는 것이잖아요. 이런 아이러니한 이름을 짓게 된 이유가 있나요.

실제로 대만에 망우삼림이라는 숲이 있어요. 거기서 가져온 이름인데, 예전 여자친구가 이 숲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마침 그 기억이 떠올랐고 홍콩 영화를 좋아해서인지 예전부터 제 공간을 갖게 되면 네 글자 상호를 해야겠다는 다짐도 있었고.

우리가 집착적으로 사진을 찍고 무언가를 기억하려고 하는 행위들과 이 공간 사이에 어떤 이질감을 주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기록하는 행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주기도 하고요. 현상소는 당신의 어떤 순간을 사진으로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곳이지만 뭐, 잊어버려도 좋다. 이런 쿨한 자세를 취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예전부터 현상소에 대한 꿈이 있으셨던 건가요. 사실 요즘 필름 카메라를 쓰는 이가 많지 않잖아요.

술을 좋아해서 술집을 열 줄 알았어요. 현상소를 차린 이유는 이 시대의 아날로그를 부활시키겠다는 어마어마한 포부도 아니었고, 그런 거 관심도 없어요. 심지어 저는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지도 않아요. 과거에 현상소에서 일 년 정도 일한 경험이 있어요. 느꼈던 점이 사진을 찍고, 발품을 팔아 맡기고 찾아가는 일 등 이 모든 과정 자체가 하나의 스토리인데 공장식 시스템 속에서 그런 이야기가 거세되는 것이 아쉬웠던 것 같아요.

사진관이란 공간과 그곳에서 사진을 내어주는 이도 추억의 요소로 자리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어요. 엄연히 따지면 테이블이 놓인 자리는 저에게는 필요가 없거든요. 기계가 들어가면 더 좋죠. 하지만 돈을 버는 목적보다는 을지로가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고, 주변에 작가 친구들도 많고, 우연히 목돈도 생기고. 여러 가지 상황이 맞았던 거 같아요.

사진작가로서의 윤병주와 다른 이들의 사건을 발화시켜주는 윤병주, 사진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다른 역할을 하는데 이 둘은 어떤 영향을 주고받나요.

아무래도 작가로 활동하는 경험이 손님들을 대할 때 영향을 많이 미치고, 그 지점을 조금 색다르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제가 전문가다 보니 메커니즘적인 측면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저는 사진의 네러티브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잘 찍었다고 말하는 사진은 조리개 혹은 노출을 잘 맞춘 것이 아니라 특이하거나 특별한 감성이 담긴 이야기예요.

그렇다면 이 일이 반대로 작가님 작품의 영감이 되는 경우는 없나요.

예전 현상소에서 일할 때도 도움이 될까 해서 시작했지만 사실 전혀 없습니다. (웃음)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앞서도 말했듯 보통의 현상소는 소통 구조가 단절되어 있잖아요. 사진관 주인도 대리자 같은 개념이고요. 이곳의 손님들은 꼭 필름 현상이 아니라도 그냥 카페처럼 쉬다 가시기도 해요. 사실 사람을 대하는 게 현상, 스캔, 인화보다 더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전 수다를 좋아해서 이야기하는 걸 즐기는 편이에요.

작업하신 사진을 보면 척박한 화성, 여러 문화가 혼재된 우사단, 유년의 기억이 있는 아르헨티나 등 공간에 대한 이미지가 강렬한데 망우삼림도 상당히 매혹적이에요. 홍콩영화를 떠올리게 하고요.

SNS에서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어서인지 이 공간을 홍콩 콘셉트라고 많이들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사실 그건 아니에요. 잘 보면 타일, 네온사인 정도지 이곳이 홍콩분위기라고 단정 지을 만한 아이템은 없어요. 아, 저 램프는 영화 ‘해피투게더’에 나온 건데 제가 무려 17년을 수소문해서 미국에서 어렵게 구했어요. 미국에서는 인기가 없더라고요.

저는 이 공간이 하나의 이미지로 명명되길 원하진 않아요. 그냥 주인의 취향이 반영된 공간일 뿐이지. 물론 홍콩 영화를 좋아하니 제 취향의 한 요소로 들어갔겠죠. 저는 날씨 쨍한 미국 서부, 남미 좋아합니다.

그렇다면 개인 사진 작업에 영감을 주는 공간이 있나요.

제가 살았고 작업했던 용산구 우사단로 만큼의 특이성이 있지 않은 한 크게 영감을 받는 공간은 없어요. 제가 한평생 서울에서 살기도 했고. 지금은 언젠가 그런 장소가 나타나겠지, 혹은 그런 공간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만 현재는 가게에 오랜 시간 있으니 쉽진 않네요. 그래서 다음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웃음)

홍콩 영화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어렸을 때 사정상 집에 가구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 비디오 플레이어는 있어서 친구들은 학원 가고 저는 비디오 대여점 아저씨랑 놀았어요. 어머니가 하루에 천 원씩 용돈을 주시면 오백 원은 과자 사 먹고, 나머지 돈으로 비디오를 빌려봤어요. 그때 아저씨가 에로의 범주가 아닌 ‘타락천사’같은 청불 영화를 권해주셨어요. 어떻게 보면 그 아저씨가 제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겠네요.

남자가 봐도 양조위란 배우가 너무 잘생겼더라고요. 크면 저렇게 돼야지 생각했어요. 작품도 작품이지만 친구들이 핑클 좋아할 때 저는 양조위, 왕조현에게 빠져있었죠.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 광둥어가 참 매력적으로 들렸어요. 또 남들보다 멋있는 거 좋아한다 이런 느낌에 취해있던 거 같아요. 그때는 제가 앞서가는 감성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30대가 되고 서서히 홍콩 분위기의 공간들이 하나둘 생기는 걸 보고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제 또래의 사람들이 여력이 됐을 때 마음에 품었던 공간을 꾸린 걸 테니까요.

망우삼림에서 하는 많은 일 중 가장 좋아하는 행위는 뭔가요.

이 공간이 북서향인데 실제로 지는 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요. 앞 건물에 반사된 석양빛만이 들어오는데, 그 시간이 참 좋아요. 이 공간의 골든타임이죠. 오늘도 10~20분 잠깐 볼 수 있었어요.

뿐만 아니라 크게 가진 거 없이 시작했는데,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밌어요. 손님에게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직원들의 퇴근이 빨라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등요.

All Photos by 이현석

사진작가지만 카메라가 짐처럼 느껴진 적은 없나요. 단순 무게의 의미를 떠나서요.

저는 평소에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지 않아요. 무거워서요. 오히려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을 때는 렌즈를 많이 가지고 다녔는데, 아르헨티나에서 작업할 때도 아이폰 하나 가져갔어요. 그래서 가장 좋은 아이폰을 써요. 저는 우연히 만난 순간과 장면으로 작업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짐처럼 느껴진 적은 없습니다.

혹시 임볼든 독자들을 위해 매일 가지고 다니시는 EDC를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핸드폰과 신용카드 딱 두 개만 주머니에 넣고 다녀요. 그리고 담배 정도. 하지만 이보다 더 콤팩트 해질 방법에 대해 계속 고민 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