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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모터사이클 이야기 (1)
2023-02-22T18:24:40+09:00
영화로 보는 모터사이클 이야기 (1)

베스파, 할리 데이비슨 같은 아이코닉한 브랜드의 이미지 메이킹은 모두 영화를 통해 완성됐다.

분명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모터사이클에 대한 동경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바이크의 안장 위에 오르게 만드는 수많은 영화 속 명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스타들의 모습과 함께 우리의 마음속 한구석을 차지했던 영화 속 모터사이클의 파편들을 하나하나 찾아보자.

로마의 휴일(1953) – 베스파

일상복을 입고도 탈 수 있는 편리한 이동수단인 스쿠터의 현대적인 기원은 방산업체였던 피아지오가 전후 시대에 생존을 위해 생산한 베스파(Vespa)로부터 출발한다. 사실 이 브랜드는 애플의 아이폰과 의미 측면에서 꽤 닮아있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최초의 존재이며, 감성의 아이콘이 되었고, 가성비는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기 때문이다.

이 최초의 스쿠터를 감성의 아이콘으로 만들어준 일등 공신은 바로 영화 ‘로마의 휴일’이었다. 오드리 햅번이 그레고리 펙을 뒤에 태운 채 형편없는 주행을 선보인 이 웃기는 신은 실제로 영화 내에선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이 베스파는 포스터에도 등장했고, 영화의 상징적인 소품으로 남았다. 덕분에 피아지오는 영화 개봉 직후 10만 대의 베스파를 팔아 치웠고, 모델명이었던 베스파는 브랜드로 독립해 오늘날 클래식 스쿠터의 대명사가 된다.


대탈주(1963) – 트라이엄프 TR6 트로피

1968년에 개봉한 ‘블리트’는 지금까지도 카 체이싱의 교과서라고 할만한 명장면을 가득 담아낸 명화다. 이 카 체이싱 신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주연 스티브 맥퀸. 지독한 스피드광으로 알려진 그는 자동차뿐 아니라 대단한 모터사이클 마니아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기념비적인 카 체이싱 이전에는 바로 1963년 작 ‘대탈주’에서의 모터사이클 스턴트 신이 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에서 스티브 맥퀸은 트라이엄프(Triumph)의 TR6 트로피를 타고 포로수용소를 탈출한다. 물론 지금이야 CG의 힘을 빌려 하늘을 날고, 땅으로 누워서 슬라이딩하는 등 각종 묘기 퍼레이드를 영화 속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절 영화 속에서 맥퀸이 TR6 트로피를 타고 포로수용소의 바리케이드를 훌쩍 뛰어넘는 장면은 굉장히 멋진 장면이었다.

다만 맥퀸은 원활한 스턴트를 위해 원래 예정된 모터사이클이 아닌, 자신의 손에 익은 트라이엄프 바이크를 탔다고. 어쨌든 이 역사적인 모터사이클은 본네빌이라는 이름의 정신적 후속작이 지금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지라이더(1969) – 할리데이비슨 히드라 글라이드

오늘날 할리데이비슨(Harley-Davidson)의 이미지를 확립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바로 이 단 한 편의 영화였다. 불법으로 마리화나를 팔고, 이를 통해 모은 돈으로 모터사이클을 사서 자유를 찾아 북미 대륙을 가로지른다는 두 청년의 이야기. 지금 보면 뻔한 구닥다리 플롯이지만, 히피 문화로 대두되던 1960~70년대의 젊은 층에 자유와 반항이라는 코드를 뼛속까지 심기에 충분했다.

할리데이비슨은 바로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로 자리한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영화 속 모터사이클은 초퍼(Chopper) 스타일의 커스텀 바이크로, 주연인 피터 폰다가 타던 성조기 디자인의 바이크는 ‘캡틴 아메리카’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하다. 제작에 쓰인 원본 모델은 1952년식 할리데이비슨 히드라 글라이드로 알려져 있는데, 폰다가 경매로 구입한 바이크를 커스텀 한 것이다.

한편, 이 모터사이클은 영화 촬영을 위해 4대가 더 만들어졌다. 하지만 촬영 도중 대부분이 부서지고 도난을 당했다. 지난 2014년에는 경매에 영화 속 오리지널 캡틴 아메리카라고 주장하는 매물이 올라와 135만 달러에 판매된 적이 있지만, 실제 전문가들은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진실은 저 너머에.


탑건(1986) – 가와사키 GPZ900R

‘탑건’의 의미는 단지 영화의 오락적 재미나 흥행에 그치지 않는다. 문자 그대로 좋았던 그 시절, 모든 문화와 감수성이 집약된 80년대의 노스탤지어가 고스란히 하나의 영화에 담겨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상징하는 굵직한 소재를 뽑으라고 한다면, ‘Take my breath away’, ‘Danger Zone’ 같은 훌륭한 OST와 함께 모터사이클도 빼놓을 수 없다.

익히 알려진 대로 톰 크루즈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모터사이클을 사랑하는 배우다. 그의 작품에는 항상 모터사이클이 나왔고, 본인이 직접 스로틀을 감아가며 촬영을 마치곤 했다. 영화 ‘탑건’은 모터사이클에 대한 그의 열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기점이었다. 석양이 지는 해변을 배경으로 찰리를 태우고 달리는 장면, 활주로를 맹렬히 질주하는 모습 등 강렬한 이미지로 남은 이 장면들은 모두 크루즈가 가와사키(Kawasaki) GPZ900R을 타고 촬영했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 908cc 4기통 엔진으로 110마력의 엄청난 출력을 내뿜었던 이 바이크는 사실 이전까지 처참한 판매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의 효과로 GPZ900R은 뒤늦게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더 나아가 80년대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코닉한 모델로 등극하기까지 했으니, 그 과정이 참 드라마틱하다고 할 수밖에. 참고로 곧 개봉 예정인 ‘탑건: 매버릭’의 트레일러에서도 가와사키의 닌자 H2를 타고 달리는 톰 크루즈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마네킹(1987) – 할리데이비슨 883 스포스터(XLH 883)

자신이 만든 마네킹이 알고 보니 고대의 공주였고, 이 마네킹이 사람으로 변해 보잘것없는 빈털터리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 뒤 역경과 고난을 딛고 해피엔딩. 이 정도면 로맨틱 코미디의 탈을 쓴 초현실 판타지 SF 영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영화 ‘마네킹’은 그래서 남자의 순수한 로망을 자극했고, 그 시절 우리들의 마음속에 깊은 화흔을 남겼다.

주인공 조나단 역을 연기한 앤드류 맥카시는 작품 초반, 시종일관 찌질한 청년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의 이동수단이 사륜차가 아닌 이륜차로 설정된 것도 딱한 처지를 상징하는 장치로 작용했다. 마침 영화 속 조나단의 애마는 할리데이비슨에서 가장 콤팩트하고 저렴한 엔트리급에 속하는 883 스포스터였다.

하지만 처량했던 모습과는 별개로, 스포스터는 할리데이비슨 역사를 통틀어 역대 최고의 엔진으로 평가받는 공랭 에볼루션 엔진을 탑재한 웰메이드 모터사이클이다. 이 엔진은 수십 년이 지난 현재의 스포스터에도 여전히 적용될 정도로 무시무시한 내구성을 자랑한다. 환경 규제로 인해 곧 공랭의 시대가 저물 예정이라, 아날로그 감성을 간직한 최후의 모델로 훗날 길이 추억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