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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 디자이너가 슈트를 말한다: 슈트로 여름나기
2023-02-22T18:56:55+09:00

아무리 덥다고 결혼식에 티셔츠 한 장 입고 갈 순 없잖아?

숨만 쉬어도 땀이 흐르는 계절이 왔다. 포멀한 슈트와는 눈만 마주쳐도 덥고, 각종 행사는 여름에도 즐비하고, 하지만 그 멋은 포기할 수 없다. 셔츠 단추를 풀까 말까 고민에 빠진 당신을 위해 시원하면서도 스타일은 잃지 않는 방법을 말해줄 테니, 모니터에 밑줄 그을 준비 하시길. 이 페이지를 클릭한 당신은 오늘 누구보다 운 좋은 남자다.

일단 여름 슈트는 원단이 키포인트이다. 가벼운 소재로 통풍성을 높여 시원함은 물론 겉보기에도 차려입은 느낌을 줘야 하니까. 슈트 소재부터 훑고 가자. 

리넨 (Linen)

리넨은 여름 슈트에 사용되는 가장 클래식한 소재로,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다. 까슬까슬한 감촉 특성상 가볍고 통기성이 뛰어나 여름 소재로 제격이다. 단점을 꼽자면 구김이다. 때문에 비즈니스 용도로 슈트를 착용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큰 인기가 없는 것도 사실.

하지만 해답을 혼용에서 찾아보자. 단점을 보완시켜주는 울이나 면이 섞인 원단이 리넨 100%보다 더 인기가 좋다. 테일러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이 구김마저 패션으로 소화하는 그 능력이 패션 고수를 가리는 척도가 아닐까 싶다. 지긋한 나이의 숀 코너리 얼굴을 보았는가. 깊게 드리운 주름살까지 섹시해 보인다. 단점을 매력으로 승화시키는 능력, 우리도 할 수 있다.

울 (Wool)

사람들은 흔히 울 소재를 겨울을 대변하는 옷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큰 오산이다. 지구상에서 현존하는 슈트 옷감 중 겨울과 여름을 동시에 커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소재가 바로 이 울이기 때문. 울은 화학 구조상 겨울에는 보온성을 높여주고, 여름에는 몸을 시원하게 만드는 기특한 양면적 특성이 있다. 여름용 울은 특별히 가는 실로 얇게 직물을 짠 후 시원함을 배가시키는 특수 가공 처리를 한 것으로 흐트러지지 않은 반듯한 멋까지 선사한다.

또한 빳빳한 양털인 모헤어는 까슬한 성질이 있어 땀이 많은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아울러 실을 꼬아서 만든 하이 트위스트로 직조하면 시원한 텍스쳐가 완성된다. 너무 클래식하거나 포멀한 울의 느낌이 싫다면 면 같은 소재를 섞어 캐주얼한 아웃핏을 연출할 수 있으니 참고하자.

면 (Cotton)

면은 봄, 가을, 그리고 여름에도 활용도가 높다. 울 소재보다는 인기가 덜하지만, 면이 주는 캐주얼한 무드가 있으니, 댄디보이라면 필수 아이템으로 옷장에 꼭 하나쯤은 갖추자. 과거에는 남색이나 카키색의 면 슈트가 유행했지만, 요즘에는 베이지 톤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당신이 상위 1%의 멋쟁이라면 올여름엔 채도가 높은 진보라색이나 진한 그린 색 또는 올리브그린 색상의 면 슈트에 도전해 보길 권한다.

시어서커 (Seersucker)

앞선 소재들과 달리 낯선 이름일 거다. 하지만 윗세대에는 ‘지지미’라는 단어로 불렸던,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사용한 소재다. 지난 20년간 이 시어서커는 여름용 슈트 소재로 급부상했다. 가장 인기가 많은 디자인은 스트라이프로 흰색 바닥에 블루 줄무늬가 1:1 비율로 짜진 원단이다. 필자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이 조합이 가장 시원해 보인다. 면으로 짜진 이 원단은 너무 캐주얼해 보이니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에는 추천하지 않는다.

다음으로는 디자인에 주목해보자. 겨울, 봄 제품에는 전체적으로 안감을 넣는 게 일반적이다. 안감은 슈트의 구조(structure)에 도움이 되지만 보온성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그러나 여름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안감을 생략하거나 반만 적용한 경우 통풍성이 높아져 착용했을 때 체온으로 뜨거워진 슈트 안 온도를 낮출 수가 있다. 추가 설명하자면 예상외로 안감을 절반만 적용했을 때가 전혀 사용하지 않았을 때보다 덜 덥다. 안감은 반만이 최선, 이 사실을 기억해두자. 또 다른 방법으로는 대나무나 천연소재로 만든 라이닝을 사용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꿀팁. 남자 슈트 안쪽 겨드랑이 아래로 일명 ‘땀받이’라 불리는 작은 디테일이 있다. 이는 겨드랑이 땀이 원단을 삭히고 얼룩 생성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사실 만들기 좀 까다로워 요즘에는 생략하는 경우도 있는데, 땀이 많은 사람은 이 땀받이가 필수다. 고로 여름 슈트 제작 시 꼭 요청하자.

슈트 구조는 평면적이지 않고, 마치 양파와도 같이 무궁무진한 껍질들로 구성됐다. 여러 겹으로 만들어진 캔버스, 어깨 구조를 보완하기 위해 실제 원단보다 몇 배나 두꺼운 어깨 패드 등 여러 부속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여름에는 이 거추장스러운 디테일을 빼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슈트를 착용했을 때 옷 본래의 미학을 잃고 후줄근한 몰골을 보일 때가 많지만.

마지막 팁은 스타일링이다. 여름에는 답답한 셔츠 대신 반소매 티셔츠를 매치하고, 가죽 신발 대신 시원한 소재의 로퍼나 면직물로 만든 에스파드류, 스니커즈, 슬립온을 신자. 또 한 가지의 특별한 스타일링은 시원한 여름 모자와 매칭시키는 것이다. 모자의 나라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영국에서는 여름, 야외에서 슈트를 입을 시 모자를 스타일링 하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파나마 햇, 헌팅캡, 뉴스 보이캡, 트릴비 등 소재와 디자인을 고려해 선택하자. 비니는 제발 넣어두고.

세 줄 요약 좋아하는 당신을 위해 명료하게 다시 한번 정리하겠다. 우선 시원한 겉감 원단을 선택한 후 천연소재 안감을 반만 넣자. 앞판에 적용되는 캔버스를 최소한의 구조로 제작하고 두꺼운 어깨 패드 또한 가장 작게 만들면 좋다. 여기에 조금 더 추가하자면 더블보다는 싱글 브레스트를 추천한다. 아울러 시원한 금속 단추나 자개단추를 달면 더없이 훌륭한 선택이 될 거다.

필자의 밀라노 유학 시절 기억을 떠올리면 7월 초순까지는 출퇴근길 슈트 입은 이탈리아 남자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더위는 물론이고 겨드랑이에 밴 땀까지 감수해야 하니 옷 하나 입는 일이 고된 노동처럼 느껴져 처음엔 그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건축, 문화, 예술, 패션, 음식 등등 모든 분야에서 멋을 중요시하는 그들의 성향을 파악한 후에는 그들의 스타일이 마음으로 끄덕여졌다. 어차피 티셔츠를 입어도 더운 건 매한가지다. 기왕이면 여름에도 스타일, 이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