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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코트에 나이키 있기 전, 이 구역의 최강자는 컨버스였다
2023-02-22T18:37:10+09:00

국민 스니커즈 컨버스, 지네 아니지만 깔별로 쟁여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주 살며시 아이 컨택했을 뿐인데, 너무나 선명한 존재감. 바로 컨버스 스니커즈다. 아무리 패알못이라도 이 클래식한 자태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우리 모두의 신발장에 한 켤레씩은 구비되어 있지만, 아득하고도 지극히 낯선 컨버스(Converse) 백스토리. 1908년 소소한 신발 브랜드로 시작해 세기를 거치며 아메리칸 아이콘을 정의하는 거대 서사가 된 이 브랜드 이야기를 들춰보자.

이야기는 덧신에서부터 시작된다

Image credit: Converse

업계를 막론하고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대부분의 기업은 갑작스러움, 얼떨결, 운명 등 우연의 가장한 필연 키워드를 갖고 있다. 컨버스도 마찬가지. 매사추세츠 주 몰든에서 마퀴스 밀스 컨버스가 세운 초창기 컨버스는 덧신이나 추운 날씨에 신는 투박한 고무 신발을 만드는 브랜드였다. 컨버스 러버 슈 컴퍼니라는 본래 이름이 바로 여기서 유래된 것.

이 브랜드는 계절감에 맞는 신발을 제작했지만, 농구계 성장에 영감을 받아 코트 위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기능적인 신발을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생산 시설은 계절을 잊은 채 상시로 가동됐고, 1917년 컨버스 올스타 농구화가 첫선을 보인다.

오리지널을 만나다

올스타 이전에는 1919년의 빅 나인(Big Nine)이 있었다. 이 이름은 편안함과 안정성에 초점을 맞췄던 아홉 개의 주요 기능을 가리킨다. 더블 스티칭, 가죽 발목 패치, 말가죽 트림, 덕 라이닝, 발등 가죽 레이스, 코르크 풋베드, 안정적인 발 모양, 강화된 토, 커다란 ‘C’ 로고가 박힌 튼튼한 아웃솔이다. 타깃은 성별과 나이를 불문한 남성, 여성, 아이들 모두를 위한 제품이었고 흰색과 갈색 두 가지로 제작됐다.

Image credit: Converse

빅 나인의 성공에 이어 또 다른 두 가지 모델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슈어 풋(Sure Foot)은 이전 모델의 열렬한 반응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제품인데 눈에 띄는 반동력을 가진 성능 좋은 스프링식 신발이었다. 콜리지에이트(Collegiate)도 이와 비슷한 내구성으로 유명한 모델이었지만, 슈어 풋보다 더 가벼운 무게가 특징이었다.

그렇게 컨버스 신발은 선수들의 두 발을 책임지는 아이템이 되었고 ‘미국 최고의 농구화’라는 영광스러운 별칭 달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훨훨 날아올랐다.

이 뒤를 이어 논 스키드(Non-Skid)가 나왔다. 이는 빅 나인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정교하게 디자인된 실루엣이 안정감을 더욱 높였고, 토 박스와 발등에 편안함을 살포시 세팅했다. 논 스키드의 독특한 점은 발 모양에 맞춰 제작된 뒤쪽의 이음새 부분인데, 이는 발목에 안락함을 선사한 것이 특징. 그렇게 컨버스 신발은 선수들의 두 발을 책임지는 아이템이 되었고 ‘미국 최고의 농구화’라는 영광스러운 별칭 달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훨훨 날아올랐다.

선수이자 마케터인 브랜드 용병의 활약

Image credit: Converse

1922년 미국 농구 선수인 찰스 H 척 테일러가 컨버스 판매 대표 주자로 나서며 상황은 급변했다. 그리 길진 않지만 여러 팀에서 세미 프로 농구 선수로 활약한 그의 경력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효과적인 판매 전략 수립의 주역은 바로 그의 어머니라는 점이다.

그녀는 테일러에게 농구 선수들이 필요한 신발을 실제로 구입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물었고, 그는 코치라고 답했다. 이 의견을 바탕으로 그녀는 실제 선수들이 아닌 코치들에게 직접 신발 판매를 판매하도록 조언했다.

아울러 테일러는 가지고 있는 농구 지식을 이용해 스포츠 홍보 대사로서도 명성을 쌓았다. 그는 새로운 선수들을 가르치고, 심지어 농구에 대한 얕은 지식이 깊은 통찰력 전수를 위해 클리닉을 열기도 했다. 보험을 판다면 보험왕에 오를 만한 수완이었다. 

Image credit: Converse

또한 테일러는 컨버스 농구 연보를 만들었는데, 이 안에는 브랜드의 클럽팀인 컨버스 올 스타즈 멤버들을 위한 사진, 보고서, 전략 팁들로 빼곡했다. 이곳에 실리는 것은 영광으로 여겨졌는데 이 가문의 영광은 컨버스 신발을 신는 어떤 선수에게나 주어졌다. 그렇게 컨버스와 농구는 검은 머리 파 뿌리 멘트 자동 재생되는 백년가약을 맺었고, 이 둘은 마치 동의어처럼 느껴졌다. 이는 모두 테일러의 홍보 덕분이었다. 

그는 단순 마케팅에서만 그치지 않고 새로운 디자인을 만드는데에도 일조했다. 또한 엔지니어링 측면에서도 중요한 제안을 하며 브랜드 만능 멀티 플레이어로 활약한다.

올스타로 리브랜딩 됐던 논 스키드는 테일러의 감각적인 손길을 거쳐 새로이 태어났다. 안정성과 유동성을 업그레이드시키고 발목 부분 동그란 로고 패치를 더해 지지력을 끌어올렸다. 이러한 테일러의 중대한 공헌을 기리기 위해 컨버스는 1934년 발목 패치에 그의 이름을 더했다. 올스타는 그렇게 당신이 아는 척 테일러 올스타가 되었다.

컨버스의 오르락, 내리락

Image credit: USA Basketball

컨버스는 1936년 올림픽의 공식 신발로 선정되었다. 바로 이 올림픽 경기에서 미국 농구팀이 옆면에 붉은색과 파란색의 줄이 있는 신상 흰색 컨버스화를 세상에 선보였다. 단순 국뽕 아이템이 아닌 오늘날 아이콘이 된 척 테일러다. 비록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점수인 19대8이라는 결과를 남겼지만, 이 운동화는 미국 팀이 인상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도왔다.

컨버스화는 선수들이 신는 신발이라는 일종의 엘리트적인 명성을 쌓게 되었고, 브랜드는 높은 기대치에 부흥하는 신발을 만들게 됐다.

컨버스화는 선수들이 신는 신발이라는 일종의 엘리트적인 명성을 쌓게 되었고, 브랜드는 높은 기대치에 부흥하는 신발을 만들게 됐다. 그 핵심은 접지력이었다. 여러 혁신을 더한 제품들을 선보이며 컨버스는 쭉쭉 오르는 매출 그래프를 흐뭇하게 지켜봤다.

Image credit: Converse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인기는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 컨버스는 하향 곡선을 탄다. 다른 브랜드들과의 불꽃 튀는 경쟁을 치러야 했고, 경쟁 업체 중 중 다수는 코트 위에서 자사 브랜드 신발과 옷을 입도록 엄청난 돈을 지불해 프로 선수들과 제휴를 맺었다. 반면 컨버스는 단 한 번도 선수들에게 이런 거래를 하지 않았고 1975년이 돼서야 “Dr. J” 줄리어스 어빙(Julius Erving)과 홍보 계약을 맺었다.

나이키, 아디다스와 같은 브랜드들이 사방에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퍼포먼스 중심 운동화들이 업계를 장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래된 기술은 컨버스가 뒤처지게 된 원인이었다. 물론 모두가 컨버스화를 좋아했지만, 점점 많은 선수가 더 두꺼운 고무 밑창과 윗부분이 부드러운 가죽으로 된 지지력 좋은 신발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나이키, 아디다스와 같은 브랜드들이 사방에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퍼포먼스 중심 운동화들이 업계를 장악했다. 그에 비해 컨버스 올스타가 프로 농구 경기 코트에서 모습을 비춘 것은 1979년~1980년 시즌, 애틀랜타 호크스의 센터였던 트리 롤린스가 신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는 홍보 계약의 대가로 5천 달러를 받았다.

코트에서 거리로 나가다

누군가는 컨버스화가 너무 선수용으로 인식되어 코트 밖 사람들에게는 어필하기 힘들 것으로 예측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컨버스는 보란 듯이 수십 년 동안 캐주얼한 무드 뿜어내며 대중들에게 충분히 매력을 발산했다.

블론디, 라몬스, 토킹 헤드와 같은 1970년대 위대한 뮤지션들이 컨버스를 신었고, 80년대에는 영화 ‘빽 투 더 퓨쳐’에서 마티 맥플라이가 내내 컨버스를 착용했다. 또한 ‘페리스의 해방’ 속 페리스 뷰엘러와 ‘아직은 사랑을 몰라요’ 속 몰리 링월드 역시 컨버스를 즐겼다.

블론디, 라몬스, 토킹 헤드와 같은 1970년대 위대한 뮤지션들이 컨버스를 신었고, 80년대에는 영화 ‘빽 투 더 퓨쳐’에서 마티 맥플라이가 내내 컨버스를 착용했다.

심지어 90년대 뮤지션들에게는 컨버스화가 마치 교복 같았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은 이미 컨버스 사랑으로 너무 유명한 커트 코베인. 얼마나 많이 신었는지 2008년 그에게서 영감을 받은 한정판 신발들을 내놓기 위해 코트니 러브와 파트너십을 맺기도. 이 이후로도 컨버스는 그린데이, 스트록스, 에드 시런, 푸 파이터스와 같은 음악계의 유명인사의 두 발에 사뿐히 안착했다.

나이키의 품속으로

Image credit: Converse

인기에도 불구하고 컨버스의 매출은 급격히 감소했다. 다른 브랜드들과의 치열한 경쟁으로 원래의 전성기를 되찾지 못했고, 빚을 감당하려다 여러 번 파산 신청을 했다. 나이키는 2003년이 브랜드를 인수해 원래 컨버스가 지니고 있던 스트릿 감성을 상업적으로 잘 활용했다.

이는 여러모로 잘된 일이었다. 나이키는 라이프스타일에까지 영역을 넓혔고, 컨버스는 치솟는 인기를 누렸다. 메종 마르지엘라, 꼼데가르송, 오프 화이트와 같은 여러 패션 업계 유명 브랜드들과의 협업이 이를 방증했다.

컨버스 컬렉션

올 스타 외에도 계속해서 성장하는 컨버스의 컬렉션에는 수많은 옵션이 있다. 여러 소재와 디자인, 다양한 색상은 편안함과 스타일을 모두 추구하는 안목 높은 소비자에게 여러 선택지를 제공한다.

Image credit: Converse

원 스타 빈티지 스웨이드 로우 탑: 색다른 포인트가 더해진 농구화만큼 멋있는 게 또 있을까. 프리미엄 스웨이드 마감과 로우 탑이 있는 이 원 스타 모델은 감각적으로 탈바꿈했다. 이 제품은 당신이 내딛는 발자국마다 안정적인 핏감을 제공하는 쿠션으로 유연성과 편안함을 자랑한다. 옆면의 원 스타 로고로 펑키한 마무리까지.

Image credit: Converse

잭 퍼셀 캔버스 로우 탑: 심플하면서도 어디에나 어울리는 이 신발은 배드민턴 챔피언인 잭 퍼셀이 디자인한 제품이다. 매번 새로워지는 업데이트 덕에 현대적인 매력이 있을 뿐 아니라, 퍼셀의 시그니처인 스마일이 토 캡에 그려져 있고, 충분한 지지를 위해 두꺼운 쿠션도 내장되어 있다. 고무 밑창은 더욱 향상된 접지력을 제공하는 헤링본 패턴으로 새겨졌다.

Image credit: Converse

라이벌 레더 로우 탑: 머리부터 발끝까지, 라이벌 레더 로우 탑은 새로운 스타일에 약간의 올드 스쿨이 더해진 제품이다. 전체가 가죽인 데다 발등 부분이 메쉬 소재로 되어있어 스타일리쉬함과 편안함, 통기성을 모두 잡았다. 아울러 별과 V자 로고가 시선을 끈다.

Image credit: Converse

척 테일러 올스타 We Are Not Alone 로우 탑: 이 신발을 신고 당신의 목소리를 내라. 이름 그대로, 이 제품은 지구 밖 생명체의 가능성을 존중한다. 이 제품은 컨버스의 뿌리인 농구 코트에서 행성 너머 저 먼 곳까지 긴 여정을 떠난다. 길가는 이들의 눈길 독점할 수 있는 이 컨버스화는 컨버스를 또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