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전쟁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살기 위해 둘러야 했던 아이템은 실용적이고 기능적일 수밖에 없고, 전쟁 속 선망의 대상인 군인의 OOTD니 유행처럼 번져나가기 더할 나위 없었을 터. 디테일을 디자인으로 재해석한 전쟁 속 아이템들은 지금도 우리 옷장 속을 지배하고 있다. 이 글을 참고해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이 클래식 아이템들을 더욱 멋스럽게 소화해 보자.

넥타이

넥타이가 전쟁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30년 전쟁 당시 프랑스 왕실을 보호하기 위해 크로아티아 병사들이 파리에 도착했고, 그들의 목에 둘린 스카프를 보고 루이 14세가 저것이 무어냐 물었다. 스카프는 병사의 부인 혹은 연인이 무사 귀환을 바라며 건넨, 마치 부적과도 같은 것이었다.

센스 살짝 부족했던 시종장이 질문의 뜻을 잘못 이해하고 그만 크라바트, 즉 크로아티아의 병사라고 말했고, 지금도 넥타이를 프랑스어로 크라바트(cravate)라고 부른다. 크라바트의 진화 버전이 바로 지금의 넥타이다.

지난 시즌 버버리 2019 S/S Mens 쇼나 2020년 막스마라 여성복 패션쇼를 눈여겨본다면 트랜디한 넥타이 스타일링 법을 캐치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셔츠나 슈트와 같은 원단으로 만든 넥타이를 착용하는 것이다.

트렌치코트

트렌치코트 시즌이 도래했다. ‘참호’라는 트렌치(trench)의 뜻을 알고 있다면 전쟁과 매치시키기 그리 어렵지 않았을 거다. 제1차 세계대전은 고정된 진지에서만 행해지는 방어전이었다. 길게는 몇 개월을 흙 반 물 반인 참호 안에서 지내야 했다. 이에 토마스 버버리(Thomas Burberry)가 영국 육군의 승인을 받아 양털과 무명으로 짠 개버딘 원단으로 군용 레인코트, 즉 트렌치코트를 제작했고 전쟁 이후 일반 대중들에게도 소개되어 인기를 끌었다.

필자의 트렌치코트 제작 경험을 비추어 보았을 때 가장 이상적인 길이는 무릎과 발 중간 지점, 즉 정강이 높이가 슈트를 입었을 때 가장 멋스럽게 떨어진다.

일단 트렌치코트는 전장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활동성이 좋고 넉넉하게 착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옷이다. 루즈핏이 유행인 요즘 트렌드와 발맞춰 여유 있게 입어야 더 멋지다. 그러니 바람이 심한 날이나 비가 내릴 때는 벨트를 조이고 자연스러운 주름을 만들어 디테일을 살리자. 필자의 트렌치코트 제작 경험을 비추어 보았을 때 가장 이상적인 길이는 무릎과 발 중간 지점, 즉 정강이 높이가 슈트를 입었을 때 가장 멋스럽게 떨어진다.

베이지, 남색, 검정, 카키색 등 단색 트렌치를 입는 경우 체크 패턴이나 요즘 한창 트렌디한 플라워 프린트 이너를 착용해 색상의 단조로움을 피하자. 트렌치코트는 손녀에게까지 대물림할 수 있는 클래식의 대명사다. 

베레모

낭만 가득한 몽마르트르와 어울리는 이 모자 또한 유혈이 낭자한 전쟁터와 관련이 있다. 1846~1849년 스페인의 전쟁 영웅 카를로스파의 장군 토마스 수말라카레기가 붉은 베레모를 쓰고 부대를 이끌었는데 얼마나 카리스마 넘쳤던지 이를 본 시민들은 그의 모자를 따라 쓰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 알프스 일대에서 활동했던 1889년 프랑스 육군 산악부대원들은 챙이 넓은 파란 펠트 모자를 써 베레모는 붓이 들린 화가의 손이 아닌 총이 들린 군인과 더욱 밀접한 사이였다.

적응력이 뛰어난 베레모는 다른 패션 아이템들과 매치하기 쉽다. 베이지색 캐시미어 코트에 동일한 색상의 펠트 베레모, 브라운색 베레모에 역시 같은 색 가죽 장갑을 매치히면 세계 최대 규모의 남성복 박람회가 열리는 피티 우오모(Pitti Uomo)에서 파파라치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앞서 언급한 남색 색상의 피코트와 진, 버건디 색상의 펠트 베레모로 스타일을 마무리하면 이번 시즌 이 구역 패션왕은 바로 당신이다. 

피 코트 

긴 기장의 트렌치코트가 싫다면 짧은 피코트가 있다. 피코트에 달린 커다란 단추에 왜 돛 모양이 새겨져 있을까. 피코트의 원형은 18세기 네덜란드 해군의 울로 만든 방한복이다. 그 명칭은 ‘파이예케르(pij’jekker)’. 동물의 털로 거칠게 짠 외투라는 뜻을 담은 이 네덜란드어를 영어로 옮기면 ‘피 코트(Pea Coat)’이다. 19세기 말부터 영국과 미국 해군에 제복으로 보급되었고 진한 청색은 피코트의 상징. 

라운드넥 혹은 터들넥 니트에 매치하고 워싱 되지 않은 하드한 데님팬츠와 워커 부츠나 스웨이드 첼시 부츠를 스타일링 하면 데이트룩으로 손색없다.

더블브레스트의 여밈에 깔끔한 세로 주머니(muff pocket)만 달린 짧은 기장의 이 피코트는 남친룩의 대명사. 라운드넥 혹은 터들넥 니트에 매치하고 워싱 되지 않는 하드한 데님팬츠와 워커 부츠나 스웨이드 첼시 부츠를 스타일링 하면 데이트룩으로 손색없다. 타이를 한 슈트 위에 걸쳐 입으면 캐쥬얼한 피코트와 포멀한 슈트가 시너지를 발휘해 시크한 무드를 연출한다. 

봄버 재킷

제1차 세계대전에 조종사들의 방한복이었던 이 아이템. 이 재킷의 원래 명칭은 보머 재킷( Bomber Jacket)이었다. 조정석에 앉았을 때 불편하지 않도록 허리 위로 기장을 짧게 만들고 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소매와 허리를 밴드 처리한 것이 특징. 1950년대 항공 과학기술과 섬유 산업이 발달하면서 무거운 물개 가죽과 양털 대신 가볍게 특수 처리된 나일론으로 소재를 달리해 실용성을 더욱 두둑이 챙겼다.

이젠 SPA 브랜드, 고가의 명품 브랜드 할 것 없이 또한 여성복 패션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봄버 재킷. 심플하게 티셔츠나 진 팬츠에 스타일링 해도 멋스럽고 셔츠와 울 팬츠, 타이를 매치해도 썩 잘 어울린다.

카디건 

이제 집이나 사무실 의자에 카디건을 하나씩 걸어 놓는 계절이 왔다. 이 간절기 필수템은 러시아군과 프랑스, 영국, 터키 연합군 벌인 1853년 크림 전쟁이 낳은 산물이다. 19세기 영국 귀족 카디건 백작 가문의 제임스 브루드넬이 고안한 옷으로 이름도 그의 가문 명을 따서 지었다.

다친 병사들을 치료할 때 옷을 쉽게 입히고 벗길 수 있도록 스웨터에 앞을 튼 후 단추를 달아 만들었다.

다친 병사들을 치료할 때 옷을 쉽게 입히고 벗길 수 있도록 스웨터에 앞을 튼 후 단추를 달아 만들었다. 이런 근사한 옷을 생각해 낸 건 감사하지만 사령관이라는 관직을 산 후 전장에 참여한 그는 부재한 리더십으로 많은 병사의 목숨을 잃게 한 인물이기도 하다.

캐쥬얼한 진 또는 카고 팬츠로 베이직하게 스타일링하거나 격식을 차리고 싶으면 이너로 와이셔츠를 입고 카디건을 착용하면 가벼운 비즈니스 미팅에도 적절한 차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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