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은 언제나 사람이 넘쳐나서 걷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쌓이고, 신사동 가로수길은 프랜차이즈가 점령해서 정이 없다. 서울에선 드물게 서정적인 풍경과 각종 맛집, 제각기 스토리 있는 가게가 모여있는 곳. 당신을 성수동으로 초대한다. 

뚝섬역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당도하는 이 동네, 강남보다는 입지가 불편한 탓인지, 사람이 모여들어도 한계가 있다. 혹여 붐비더라도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한적한 골목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꽁꽁 숨어있는 카페나 상점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모름지기 추억은 이런 공간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법. 소개에 앞서서 지금 거론하는 모든 스팟은 에디터가 우연히, 그러나 필연적으로 직접 발굴한 공간들임을 밝힌다.

유면가

처음 이곳을 접한 건 찬 바람이 불어오며 날이 쌀쌀해질 즈음 10월의 어느 날. 배고플 때 근처를 걷다가 마침 눈에 띄어서 별 기대 없이 들어섰고, ‘유면가’라는 간판 이름만큼이나 생소한 육포면을 주문했다. 엄선한 한우 양지를 맑게 우려낸 국물을 한 입 먹는 순간, 오늘 이 식당을 선택한 내가 얼마나 대견했던지.  

참고로 메뉴는 시즌에 따라 달라진다고. 지금은 바지락 칼국수, 닭곰탕면, 흙돼지 칼국수 등이 판매되는 중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압구정의 프렌치 펍 루이상끄를 운영하던 이유석 셰프가 새로 오픈한 가게였다. 각국의 면요리를 자유롭게 선보이는 면요리 연구소 겸 식당이니, 면덕후들은 필히 방문할 것. 단, 영업시간이 짧은 관계로 방문 전에 오픈 여부를 필히 확인하길.

주소: 서울 성동구 서울숲길 51-1
문의: 02-547-1251

피초코

유면가에서 나와 1분 정도 직진하면 나오는 빈투바 초콜릿 카페. 주메뉴는 빈투바 초콜릿과 핫 초콜릿, 그리고 카카오로 만든 티 등이다. 피초코에서 판매하는 모든 초콜릿은 100% 베네수엘라 카카오빈으로 만들어졌는데, 바로 베네수엘라 교포인 존과 댄 형제가 꾸린 가게이기 때문. 우수 카카오 산지인 베네수엘라의 초콜릿 문화를 열심히 전파하는 중이다.

빈투바 초콜릿은 쇼콜라티에가 카카오 빈의 로스팅부터 콘팅, 템퍼링과 몰딩 등 전 과정을 직접 주도해 만든 초콜릿을 말한다. 한 마디로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내린 커피를 판매하는 것과 같달까. 다만, 좀 더 과정이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게 차이일 테지. 

느끼하게 달지 않고 적당하게 쌉싸름한 것이 매력적인, 어른의 맛이다. 화이트 초콜릿을 베이스로 한 커피 초콜릿, 얼그레이 초콜릿, 다크 초콜릿에 소금과 통후추를 가미한 초콜릿 등 다른 데선 볼 수 없는 유니크한 플레이버가 한가득. 심지어 자유로운 시식도 가능하다. 카카오빈에 따라 어떤 건 고소하고 또 다른 건 산미가 풍부한 맛이 나는 걸 직접 체감해 보는 일, 꽤나 특별한 경험이 될 거다. 

주소: 서울 성동구 서울숲길 47
문의: : 02-512-0565

알비

첫번째 코스인 유면가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또 다른 카페이자, 빈티지 포스터 숍이다. 동시에 이곳을 운영하는 출판사 루비박스의 사무실이기도 하다. 판매 중인 모든 포스터 들은 미국 뉴욕과 유럽 각지에서 직접 셀렉해 수입한 작품들. 그래서인지 포털에 검색해서 흔히 볼 수 있는 유사품과는 때깔부터 다르다. 

이들 모두 TV가 출현하기 전에 주요 광고 수단으로 쓰였던 역사가 있어, 한 점 한 점에 그 시대의 트렌드, 전 세계의 히트 아이템들, 그리고 이목을 끌기 위한 위트가 녹아있다. 일례로, 필자가 구매한 코닥의 포스터는 브랜드 최초로 여성 모델을 주연으로 택했는데, 당시엔 상당히 파격적인 행보였다고. 게다가 아직 잘 안 알려진 히든 스팟이라, 주말만 되면 사람이 몰려 도떼기 시장으로 변모하는 일대 카페들과는 격이 다른 여유를 선사한다.

또 한 가지 이색적인 포인트는 유럽의 고급 티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한다는 것. 특히 알비의 시그니처 티인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의 프리미엄 티 브랜드 니나스 파리의 고급 라인으로, 베르사유 궁전에서 수확한 장미가 들어있다. 한 입 마셔보면 말이 필요 없는 진가를 오로지 향과 풍미로 느낄 수 있다. 연인이 티를 즐긴다면 반드시 데려오자.

주소: 서울 성동구 서울숲2길 11-7
문의: 010-4127-9593

아쿠아 델 엘바

알비에서 6분 거리의 향수 부티크, 아쿠아 델 엘바. 민트색의 화사한 외관이 먼저 비주얼로 한 번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브랜드는 나폴레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묶여있는데, 하나는 그의 유배지였던 엘바섬에서 왔기 때문에. 그리고 약 200년 전 그가 여동생, 파올리나를 위해 선물한 향수를 복원하며 만들어진 브랜드라서 그렇다.

아쿠아 델 엘바의 모든 향수는 엘바섬의 나무와 꽃에서 에센스를 추출해 정통 방식으로 만든 수제품이다. 맑고 청명한 바다로 둘러싸인 곳이다 보니 시원하고 상큼한 향이 주를 이루나, 우아하거나 섹시한 계열도 준비돼 있다. 국내엔 아직 생소한 브랜드지만, 이탈리아에 방문하면 꼭 사와야 할 아이코닉 아이템이라고. 

향덕들은 물론이고, 평소 향수에 관심이 없더라도 저 멀리 이국의 낭만적 휴양지, 엘바섬의 향기를 접하는 일은 감각적인 경험이 될 터다. 연인과 함께 이것저것 시향해보며 인생향기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상냥하고 친절한 매니저가 상주하고 있으니, 괜히 구경하다 안 사고 나가면 민망할 것 같은 마음은 접어두고 자유롭게 즐겨보길.

주소: 서울 성동구 서울숲2길 45-1
문의: 02-6401-8885

다로베

길을 걷다가 유면가와 동시에 발견한 식당이다. 바로 맞은편에 있어 뭘 먼저 먹을지 고민하다 유면가를 먼저 갔고, 한참 시간이 흘러서야 다로베를 방문할 수 있었다. 외식하면서 가장 기쁜 순간 중 하나는 우연히 발견한 곳이 진득한 맛집이었을 때. 다로베는 그런 환희를 가져다준 장소 중 하나다.

시그니처 메뉴인 다로베 피자와 포르치니 파스타를 주문했다. 쫄깃한 도우에 부팔라 치즈, 프로슈토 고토 햄이 가미된 다로베 피자는 담백한 매력이 있었고, 포르치니 파스타는 고급스러운 느끼함이 입안에 착 감기며 중독성을 발휘했다. 유면가에서 얼큰한 첫 끼를 마친 후 일대를 둘러보다가 출출해질 때 즈음, 저녁 코스로도 오케이. 디너 부럽지 않은 런치 옵션으로도 합격이다. 

주소: 서울 성동구 서울숲길 48
문의: 02-499-3666

이스트오캄

다로베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와보니 바로 옆 건물에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간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름은 이스트오캄. 그것만 봐선 뭘 하는 곳인지 예상 불가였으나 그래서 더 재밌었던 듯. 정체는 이랬다. 업사이클링 의류와 갖가지 패션 잡화를 판매하는 숍이면서 매주 목요일 8시면 영화 상영회를 개최하는 살롱이기도 한 아늑한 공간.

머플러, 팔찌, 반다라 등 소소한 패션 잡화에서부터 남자 옷, 여자 옷 모두 다채롭게 보유하고 있어,누구 한 명 지루할 필요 없이 사이좋게 구경할 수 있다. 만 원부터 십만 원대까지 가격대도 다양하니 계획에 없던 즉석 선물을 건네기에도 제격.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엔틱한 테이블과 샹들리에로 장식된 살롱이 자리한다. 

이왕 방문할 거라면, 영화 상영회가 열리는 목요일 저녁을 노리자. 맥주나 와인 등의 음료와 함께 간단한 스낵도 준비돼 있고, 먹고 싶은 음식을 따로 가져가도 된다. 심지어 무료입장이니, 안 갈 이유가 어딨겠는가. 영화관이랑은 또 다른 로맨틱한 분위기에서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볼 이런 기회, 놓치면 바보다. 

주소: 서울 성동구 서울숲길 46 B1
문의: 02-6439-0201

TBD

간판이 없다. 흰색 페인트로 덧칠한 벽에는 그 흔한 액자 하나 걸려있지 않다. 테이블과 의자 등 오로지 손님이 앉아서 요리를 먹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가구만이 준비되어 있을 뿐이다. 와인 애호가인 동료의 추천을 받아 찾아간 이곳. 미니멀해도 이렇게 미니멀할 수가 없었다.

TBD는 점심에는 샌드위치 카페였다가 저녁에는 내추럴 와인바로 컨셉이 바뀌는 자연주의 식당이다. 특히 와인마저 내추럴을 제공한다는 점이 눈에 띄는데, 한입에 마니아를 사로잡는 훌륭한 퀄리티의 친자연적 와인만을 취급한다고. 약간 늦은 점심, 혹은 저녁을 즐긴 후 술한 잔 하러 들르는 마지막 코스로 안내한다면, 상대의 마음속엔 어느새 수준급 센스남이 되어있을 것이다.

주소: 서울 성동구 연무장길 6
문의: 02-465-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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